こい/novel

既読. 액정 표면 형형하게 빛나는 두 자를 바라다 문득 한숨 쉬었다. 그런 허울도 덜어 낼 수 없었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정면만 향하다 창 바깥을 관조했다. 석양이 저물고 어두워진 지 제법 지난 실외서는 어느덧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소란스런 초침 소리에 다시 사각을 휘자 거실로 들이치는 적막. 구석으로 쌓아 둔 여러 소포 꾸러미와 자필 편지가 무색할 정도로. 늘어지는 그림자에 단단하게 수화기를 잡았다. 째깍째깍 소음과 울리지 않는 폰. 초조하게 다리를 접었다. 고대하지 말자. 마음 걸지 말자. 얕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추스르며.



자. 지금부터 은혜의 お誕生日 특별 데이트 코스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평화롭고 한가하던 평일의 오후. 거리를 거닐다 따갑게 쏟아지는 볕에 근처의 카페로 피신해 온 차였다. 서느런 냉방기 바람 맞으며 은혜는 얼음 띄운 음료수를 삼켰다. 따로 하고 싶은 일 있어? 무릎이 닿도록 마주 앉은 나유타가 은혜의 손을 살살 만지거나 문지르며 물었다. 글쎄. 사실 평소와 다른 코스를 원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저 오빠와 같이 있으면 돼. 그래도 너무 평범하지 않아? 그러면 오빠가 설계해 봐. 나는 전적으로 오빠에게 맡길 테니까.

으음. 검지 말단을 꾹 꾹 누르던 나유타가 살짝 갈피 틀며 음량 낮추었다. 그런데 은혜야. 응? 내가 오후에 외부 예정이 있어서 약간 늦게 만날 것 같아. 그래도 네가 싫다고 하면 어떻게든. 마침 울리는 폰에 메시지 내용 훑으며 은혜는 선선히 끄덕였다. 아냐. 나도 그날 별도로 스케줄 있어서 괜찮아. 일자 넘어가기 전에는 얼굴 볼 수 있는 거지? 당연하지. 고민 않고 당도해 온 회신에는 살풋 서렸던 긴장을 끄르고 일렀다. 됐어.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늘어지는 머리칼. 말미로 가벼운 어조가 머무른다. 은혜 너 후회한다. 내가 진짜 모습만 비추고 가 버리면 어떡하게.

내리 붙들려 있던 팔을 무르고 부러 과장스레 반응했다. 헐. 오빠 그럴 거야? 나 실망할 것 같은데. 살짝 정색하는 기미를 띠었을 뿐인데 나유타는 곧장 수그렸다. 아니. 나는 단지 조크처럼 하고 싶었는데 그게. 그냥 아예 신경 쓰지 말아. 절대 안 그럴 테니까. 해답 잃어 방황하는 표정을 구경하다 푸핫 실소했다. 눈치 살피던 나유타는 조금의 버퍼링을 두고 뺨 덥히며 따라 웃었다. 그래. 이렇게 잔잔하고 안온한 일상이 차질 없이 이어진다면야 구태여 이벤트나 생색 같은 것 꾸미지 않아도 좋다. 무엇을 선사한다 해도 부럽지 않은 선물은 이미 한참 이전에 받았다.

탄신제 당일. 은혜는 아침부터 가쁘게 짜여진 일정들을 차곡 이루고 소화했다. 아이돌에게는 기념일도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 일종의 서비스 업무이자 팬과 지니는 결속을 증명할 기회. 저가 오롯이 받아야 했을 행복만큼 타인에게 꿈을 베풀어 줄 의무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은혜는 이러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순리를 정확하게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즐기고 있었다. 선망의 존재와 나란히 빵 자르고 초 불어 끄며 종이 개어 적은 편지를 건네는 것. 얼마나 설레는 행사인가 알았기에 성의껏 임하고 움직였다. 비록 참여하는 인원은 지극히 소수라 하더라도.

오빠. 오고 있어? 본래 흘러야 하는 방향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던 것은 잡지 스튜디오서의 일이었다. 끼니도 챙길 겨를 없어 간단하게 목만 축이며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 출판사 측이 야간까지 딜레이가 있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기에 해당 박자로 맞추어 바쁘게 거동해야 했다. 수시로 의상을 체크하고 메이크업 수정했다. 초침의 속력을 금세 건져 내지 못해 훌쩍 기한이 넘어간 것도 부지하던 채였다. 불현듯 감각 차렸을 무렵에 이미 시계는 여섯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전화를 확인했다. 나유타에게서 수신된 연락은 없었다. 단 하나도.

화보 정리는 여덟 시가 다 되어 끝이 났다. 서둘러 인사 나누고 이르게 자리를 떴다. 무례하다 후문이 나올 것을 얼마는 각오한 짓이었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읽음 표시도 뜨지 않는 단말의 화면을 내리 지켰다. 이럴 사람이 아닌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내가 먼저 메일이나 통화를 시도하는 건. 실내에 있던 나절에도 고민했다. 주위는 어두워도 먹구름 끼어 우중충한 하늘이 잘 보였다. 귀가하고서도 일찍 다다라 나를 놀라게 해 주려고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만 부풀어 버린 가슴에 느릿이 구두 벗고 말았다. 형광등 켜고도 나유타는 없었다.

은혜가 턱을 추켰다. 바늘이 좇는 숫자는 어느덧 십일. 그는 발신에 응하지 않는다. 지각할 것 미리 언질해 주었기는 했어도 이렇게 찰나의 조우마저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게만 줄은. 나유타가 저와의 약속을 이러한 식으로 어긴 것은 이례적이었기에 더욱 속이 쓰렸다. 어떠한 까닭이나 사정이 그에게도 있겠지. 저 역시 나유타와 완전히는 아니어도 비슷한 류의 업을 골랐기에. 나와 너. 이따금은 우리보다 급하고 중요한 해프닝이 벌어질 수 있는 곳이니까. 납득 가지 않아도 숙지해야 한다고 여겼다. 자신을 못내 다독이고 부추겼다. 혹은 타일렀다. 유치하게 굴지 말라고.

분은 차츰 달리고 기워져 자정으로 접근한다. 미련 놓지 못하고 관망하다 이내 숙였다. 됐어. 생일이 뭐 별거인가. 오늘만이 날도 아니고. 조금 서운한 것은 있었지만. 애초 근로 계획 있다고 했는데도 바보같이 기대했던 내 잘못이다. 스태프가 주었던 유명 제과점의 파이와 싸늘하게 식어 가는 전구를 바랐다. 커피 마시며 저에게 까닥여 보이던 나유타의 장난기 넘치는 눈. 혹시나 깜짝 카메라 같은 것을 준비해 내밀지는 않을까. 그러한 소망을 가지기도 했었다. 정말이지 몹시 잠깐이었어도. 이제는 어른이 되어야지. 사소한 일을 논하며 간단하게 일희일비하지 않는.

그러나 단념했다 생각했던 순간 영화처럼 들려오는 기척. 뭐야. 포기했다 간주했는데도. 거실에서 벗어나다 퍼뜩 몸을 돌렸다. 관성인 듯 현관으로 뛰면서도 내심 달달 외었다. 아니겠지. 소포일 거야. 퀵이거나. 오빠는 못 와. 주문을 암기하듯 읊조렸다. 허튼 희망으로 더 커다란 낙담과 마주하게 될 것만 같아서. 아닌 척 갈무리한 상처에 보다 커다란 흠집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그럼에도 미처 그치거나 깎을 수 없었던 일말의 바람은. 숨 참으며 문을 열자마자. 비로소 불 붙인 케이크를 들고 있는 나유타와 맞닥트렸을 때. 안녕 은혜야. 마지막으로 축하해 주는 거지? 내가.

미안해. 서프라이즈로 더 기쁘게 해 주고 싶어서 이런 계획을 벌였던 건데. 안으로 들어와 착석했다. 묽게 녹은 생크림과 점처럼 박힌 촛농은 옆으로 밀어 놓은 채 목 구부리고 있는 나유타의 고백을 청취했다. 경로가 지나치게 꼬였어. 일단 나도 갑작스레 정해진 미팅으로 종료가 미루어져 곤란했고. 열흘 전 예약했던 가게서의 픽업도 지체되었거든. 주문을 착각했다 하시더라. 게다가 네가 아직 세트장에 있는 것으로 전해져서. 멍청하게 장소까지 착각해 버렸던 거야. 그래도 다행히 가까스로나마 너에게 닿을 수 있었네. 택시 기사를 보채고 재촉한 보람이 있다.

무척이나 복잡스런 정서인 듯 모호한 톤으로 해설하던 나유타가 시선을 피했다. 아니. 정직해지자면 면목조차 없어 나. 우리 사귀고 처음으로 맞는 너의 기념일이잖아. 그래서 가장 잘해 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무리였던 건가 봐.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너에게는 핑계처럼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정말이야. 온점을 결로 안개처럼 깔리는 적막. 푹 가라앉아 무거워진 정수리를 물끄러미 지키다 일렀다. 그러게 그런 이야기를 왜 해.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은 일본에도 있는데. 嘘から出た誠였던가. 맞아 오빠? 가르쳐 줘. 그러자 주저하다 고요했다. 응.

사실 말이야. 아까는 조금 속상할 뻔도 했었는데 있지.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 고개 들어 초리를 아물린다. 그가 불안스런 빛이 역력했다. 은혜야. 초조한 호명에는 희소하며 내저었다. 걱정 말아 오빠. 나는 진심이야. 우리는 앞으로도 이렇게 각별한 날마다 함께 시간을 보낼 테니까. 잊거나 빼지 않고 자연스레 서로를 마주할 거잖아. 아주 오랫동안. 나는 그런 우리를 믿어. 단단하게 발음하는 마디마다 감격으로 차오르는 투명한 속내를 목도한다. 열 오른 이마가 아프지 않게 부딪친다. 나도. 우리를 감히 확신해. 깍지 껴 살을 맞대고. 서로의 동공을 곧게 우러르며. 다음에는 뭐 가지고 오지 마. 도착한 오빠를 바로 안아 주고 싶으니까.

응. 해피 버스데이 은혜야. 우리는 누구보다 길게 사랑하자.

DALBOM